[영화] 퍼스트카우
개척시대, 순치
아무것도 없는 미지의 장소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먹거리와 기회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면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겠지. 자주다니던 길이 다져지고, 점점 정착하겠지. 혼자다니다가 모여서 살게 되겠지. 서로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거나 사고팔 수 있고, 그 중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좌절하겠지. 그렇게 야생에서 문화가 만들어질테지.
두 남자 이야기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한다. 어느 강가, 커다란 배가 유유히 지나가는 장면과 함께 어느 여자가 개와 산책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의 유골을 발견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머리 쪽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자세다. 이어지는 장면은 19세기 미국의 개척시대로 넘어간다. 두 남자가 우연히 만나서 친구가 되고 함께 살아가다가 이윽고 나란히 눕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서부 개척시대 풍경
서부영화의 풍경은 뿌연 먼지를 일으키는 장쾌한 벌판이 익숙하다. 등장인물은 대개 총을 들고 말을 타는 폼나는 카우보이다. 이 영화는 반대다. 축축한 강가의 숲속에서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먹고 자느라 꼬질꼬질하다. 여기저기서 불을 피우고 길은 질척거린다. 실제로 미지의 땅에서 생존하기에는 광활한 벌판보다는 숲과 강이 있는 곳이 유리할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쿠키와 루도 숲속에서 처음 만난다. 사람들은 숲에서 버섯이나 열매를 따 먹기도 하고 잡은 동물의 털을 유럽에 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뗏목을 이용해서 외부와 물자를 교류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암소 한 마리가 강을 통해 들어온다.
우유를 넣은 케이크
쿠키와 루는 우연히 다시 만나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돈을 벌지 궁리한다. 지역에 한 마리밖에 없는 암소의 젖을 훔쳐서 우유가 들어간 케이크(라고 하기에는 튀긴 빵에 가까운)를 만들어 팔기로 한다. 장사 첫날부터 순식간에 케이크는 동이나고 하나 남은 케이크를 서로 사겠다고 웃돈을 주며 경쟁할 정도로 흥행한다. 지역의 세력가가 소유한 소의 젖을 훔쳐서 만든 케이크가 입소문이 난다는 건 둘의 사업이 위험해진다는 거다.
지역의 세력가는 자신의 젖을 훔쳐 만든 케이크인지 모르고 소문을 듣고 찾아 온다. 그는 런던에서 먹던 맛에 반해서 손님을 맞이할 케이크를 주문한다. 그 쯤에서 멈추어야 했을 위험한 쿠키와 루의사업은 당연히 파국에 이른다.
그들의 순치
영화는 느리고 설명은 적지만 마음이 따듯해지는 영화다. 한없이 순한 눈동자를 가진 쿠키가 뚝딱 만들어내는 케이크에서는 마치 버터냄새가 나는 듯 하고, 진취적이고 낙천적인 중국인 루의 도전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기도 한다.
둘이 다시 만난 날, 루는 숲속의 작은 오두막에 쿠키를 데려간다. 오두막이라기보다 산에서 주운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비나 산 짐숭을 겨우 피할 수 있는 수준의 간이 구조물에 가깝다. 루는 편하게 앉아 있으라고 한 후 불을 피우기 위해 나가자 쿠키는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빗자루를 든 쿠키와 함께 작은 창문 사이로 장작을 패는 루가 보인다. 바닥을 치운 쿠키는 밖에 나가서 들꽃을 꺾어와 병에 담는다. 나는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다. 두 사람의 품성이나 태도가 별다른 설명 없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그 곳에서 함께 살며 꿈을 빚는다. 소란스럽지 않은 그들의 출발. 어쩌면 문명의 시작!
비록 그들은 애써서 모은 돈을 들고 희망의 땅으로 떠나지 못했지만, 머리를 맞대고 누운 채 쉬는 듯 마감한 둘의 생은 외롭지 않았으리라. 21세기, 풍요로워진 우리는 과연 그들보다 덜 외로운가. 우리 삶은 때때로 소란하고 자주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