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
우리는 왜 함께 공부하는가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흑산도 귀양시절에 쓴 어류도감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에 이어 실존인물의 서사를 그렸다. 흑백영화라는 점도 같다. 흑산의 하늘과 바다가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백 중에서도 더 밝은 빛이 있고, 흑 중에서도 더 짙은 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의 역사적 배경은 엄청난 비극에서 출발한다.
때는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막 즉위하던 시대다. 신유박해로 천주교를 믿거나 전파한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고 귀향을 간다. 형제 중 정약종은 사형에 처해지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멀고 먼 흑산도 유배길에 오른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 세상과 단절된 채 귀양을 가면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약용이 강진에서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목민심서나 흠흠심서와 같이 학자다운 품격있는 글을 쓰는 동안 정약전은 왜 어류도감을 썼을까. 그마저도 책상에 앉아서 쓴 문헌고찰형이 아니라 실제 물고기를 잡아서 배를 가르며 관찰하며 쓴 현장실무형 책이다. 그 배경과 연구 방법론이 궁금하다.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에 눈을 돌리기로 했네”
김훈이 쓴 소설 ‘흑산’은 같은 시대와 소재를 다루지만, 형제와 연루된 중요인물들이 겪는 신유박해에 방점을 두고 피비린내나는 실감형으로 그렸다. 영화는 자산어보를 쓰면서 교류하게 된 어부 창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산어보의 서문에도 창대가 등장한다. “섬에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어... 중략... 나는 그와 함께 연구하고 차례를 매겨 책을 완성하고는 ‘자산어보’라고 붙였다.” 소설 ‘흑산’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 살자. 여기서 사는 수밖에 없다. 고등어와 더불어, 창대와 장칠수와 더불어, 여기서 살자. 섬에서 살자.” 자산어보는 정약전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섬에서 함께 쓴 책이다. 유독 ‘함께’와 ‘더불어’가 눈에 띈다.
영화에서는 정약전과 창대가 더불어 교류하게 된 계기, 지식을 나누며 즐겁게 자산어보를 쓰는 과정, 그러다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결말에 이르기까지 픽션을 가미해서 펼쳐진다. 처음엔 사학죄인으로 유배 온 정약전과 교류하기 꺼리던 창대는 정약전이 가진 학문의 깊이에 매료되어 서로의 지식을 나누기로 합의한다. 정약전은 학문을, 창대는 물고기 지식을 가르쳐주며 그들은 지위와 나이를 뛰어넘어 함께 성장한다.
어류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 날, 정약전은 바닷가에서 일하고 있던 창대를 향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달려간다. 점잖은 양반의 태도가 아니라 새로운 공부를 앞둔 기대에 벅찬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우 정약용에게도 ‘애매한 사람공부 대신 명징한 사물공부’를 하기로 했다고 편지에 쓴다. 그는 ‘사물을 통해 나를 잊어보겠다’고 다짐한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공자와 주자의 가르침을 모두 깨우친 정약전도 물고기의 세계는 어부만큼 알지 못한다. 그는 끝도 없는 질문을 이어간다. 봄에 잡히는 전어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홍어와 가오리는 어떻게 다른지. 해파리가 많아지면 도미가 많아지는지, 그는 바다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무슨 질문이 그리 많냐고 타박하는 창대에게 “질문이 곧 공부다.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다”라고 답한다. 처음 보는 물고기의 배를 갈라보며 특징을 관찰하고 사소해보이는 것도 기록한다. 실제 인물인 문순득이 오키나와와 필리핀까지 표류하던 이야기를 듣고는 이를 글로 옮겼다. 이제 막 학문의 세계에 입문한 창대로서는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하찮은 것들을 기록하는 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우리가 사서삼경만 외우는 동안 서양사람들은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아내고 수리학과 기하학을 발전시켰다. 성리학과 서학은 결코 적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벗이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책으로만 배우고 그것이 최대의 진리라 믿고 폼 잡는 공부방법을 넘어서 실제 눈에 보이고 직접 겪은 것을 제대로 기록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약전은 배척보다는 받아들이는 자세로 학문도 벗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지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내가 더 깊어진다는 가치를 전한다. 너무 멋진 표현 아닌가.
술을 마시고 영화를 봐서 눈물이 난 걸까
한동안 코로나로 극장에 가지 못했다. 자산어보 개봉날, 지인과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저녁을 먹으며 와인도 제법 마셨다.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며 검은 섬이 푸르게 보이는 엔딩신에서 참았던 눈물이 났다.
나이들면서 유용하고 쓸모있는 프로젝트 대신, 왜 공부에 시간을 쏟는지 가끔 스스로 묻지만 자신있게 답하지 못했다. 정약전의 호기심어린 눈동자와 기대에 찬 표정을 보면서 저절로 알았다. 행복해진다. 살아있다고 느낀다. 단순한 해답이다.
물론 공부의 과정은 마냥 즐겁진 않다. 가끔은 심해에 떨어지는 외로움이나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닥치기도 한다. 그래서 공부는 함께 해야 한다. 정씨 형제들처럼 말이다. 서로 격려하고 자주 함께 웃어야 한다. 잘하고 있으니 지치지 말라고 정약전 선생이 토닥토닥 위로해준 것 같았다. 눈물이 난건 결코 술 때문이 아니다.
‘보라’라는 연구회를 함께 만들고 3년째가 되는 날, 우리는 이 날을 기념하기로 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질문할 것이며, 덜 외로울 것이며, 조금씩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