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아카이브란?
공원학개론 1회자로, 2019년 10월 18일 오후 4시부터 보라매공원 동부공원녹지사업소에서 진행되었다.
서울대학교 조경진 교수와 메모리플랜트 전미정 대표가 연사로 나서, 공원 아카이브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아카이브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공원 아카이브의 범위와 필요성(조경진, 서울대학교 교수)
- 현장에서 배운 아카이브 이야기(전미정, 메모리플랜트 대표)
공원 아카이브의 범위와 필요성
조경진 서울대학교 교수
한 동안 옴스테드 논문을 작성하면서 보스톤 근처 브루클라인의 옴스테드 아카이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과거에 옴스테드 사무실이었는데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에서 옴스테드 아카이브로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옴스테드 사무실의 모든 도면을 보관하고 있었고, 지금은 모든 자료가 디지털화 되어있다. 이외에도 센트럴파크에 관련된 다양한 사건과 기록, 이미지 등이 여러 형태의 서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도시공원 자체를 하나의 문화사로서 접근하고 있다.
서울의 공원도 이제는 아카이브를 시작할 시점이다. 공공 주도로 기록물을 보관하고 시민들이 잘 활용할 수 있게 하여야 공원문화가 확산될 것이다. 나는 발표를 통해 공원에 관한 개인적 기억을 소환하고자 한다. 단지 공원을 즐기던 소비자로서의 기억에서 시작해, 탑골공원과 삼청공원의 기억은 올림픽공원을 거쳐 일상공간인 대모산 자연공원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공원계획과 설계를 직접 경험하거나 자문이나 심사를 하면서 서울의 공원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되었는가를 얘기한다. 여의도공원, 선유도공원, 월드컵공원, 한강공원, 청계천, 서울숲,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용산공원, 그리고 서울식물원의 조성과정과 계획과 설계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공원 아카이브의 대상으로는 회의록, 보고서, 설계설명서, 도면, 운영계획, 결과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아카이브의 논의에서 쟁점은 주체, 장소, 소통방식이 된다. 누가 할 것인가? 어떤 공원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아카이브 자료에 어떻게 접근하게 할 것인가? 등이 우선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나아가 도시공원 아카이브센터의 필요성도 논의할 것이다.
현장에서 배운 아카이브 이야기
전미정 메모리플랜트 대표
지난 10여 년 사이에 기록, 아카이브라는 용어를 두고 폭발적인 분출이 있었다. 어느새 아카이브는 행정적 기록관리 차원을 넘어 도시재생, 건축, 문화예술, 시민사회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다종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정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기록관리 측면의 아카이브와 아카이브의 요소를 활용한 부가적인 활동 사이를 오가며 이 단어를 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더 아카이브에 대해 당혹감을 느낀다.
필자가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2004년 정도로, 단어 그대로는 기록물 보관소라는 의미였지만 내게는 정리되지 않은 오래 된 사진 뭉치, 버려진 서류 조각, 소각되기 직전의 낡은 물건들이 뒤섞인 그 무엇으로 와 닿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카이브를 총체적으로 말해주지 못한다.
개인의 경험, 불분명한 기억들에 주목하며 작업을 하다 보니 아카이브에 대한 기존의 정의와 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선별된 기록물이 말하지 못하는 틈새를 메꾸는 방법은 결국 불완전한 개인의 기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개별 정보단위로 남아있는 ‘조각들’에 집중한 나머지, 기록물 본래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거나 계층적이고 집합적인 질서를 파악하는 일을 놓칠 수도 있다.
아카이브는 하면 할수록 규정짓기 어렵다. 현재진행형의 유동적 정의의 대상이며, 오히려 아카이브의 과정에서 그 의미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당혹감’에 대해 말했지만 그 당혹감이야말로 자기다운 아카이브를 만들어내는 건강한 긴장감이 아닐까.
메모리플랜트를 하면서 “어떤 것을 기록하고,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나?”라는 질문을 참으로 많이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답이 불가능한 질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기록을 선별하는 기준. 바로 관점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어떤 기록을 선택할 것인지를 아는 것은 결국 ‘자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기록의 선별 기준을 정하는 일은 결국 활동의 정의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활동이 정의될 때, 주제어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주제어가 만들어지면 결국 그것이 역으로 활동을 재정의하는 정체성이 된다.
에릭 케텔라르(Eric Ketelaar)는 ‘기록은 산출물로서가 아니라 과정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했다. 기록을 하고, 기록물을 관리하는 일은 결국 아카이브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장의 현재성을 뛰어넘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미리 규정해버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기록을 대하는 사람들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굴레를 오가게 되는 것 같다.
‘공원학’에서 아카이브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자리는 도시, 조경, 공원 영역의 아카이브를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우선 함께 고민해야할 것은 이 영역이 기록을 생산하고 선별하고 폐기해왔는지, 즉 어떤 기록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공원학 아카이브를 구축하기(계층적이고 집합적인 정리와 분류, 수집과 보존)에 앞서 공원학이 생산한 기록물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공유된 관심사, 공통된 사안, 집단적 경험 같은 것들 말이다. 참여한 사람들의 목소리, 그들이 관계 맺어온 방식, 이 영역들의 특성에 맞게 체화된 활동을 확인하고 정리한다면 ‘공원학 아카이브’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결국 자신만의, 자기 현장의 아카이브를 정의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니까.